각자 생각하는 명품에 대한 기준이 뭐죠? 대체 명품이란 무엇일까요?박지윤 MC(이하 박지윤) 일단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기본이죠. 비싼 가격에 구입해도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가치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사실 취향에 딱 맞는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그게 명품일 수도 있어요. 옷장 안에만 들어 있어도 흥분되고 설레는 물건 말이죠. 아주 고가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나요? 제가 좋아하는 주얼리 브랜드가 있는데, 고가의 원석을 다루는 게 아니라 가짜 진주를 사용해 트렌디한 디자인을 선보이죠. 얼마 전 그 브랜드와 다른 의류 브랜드가 컬래버레이션으로 라운드 티셔츠를 제작했는데 너무 좋아서 바로 구입해 좋은 날 입으려고 모셔뒀거든요. 그냥 티셔츠일 뿐인데 독특함이 있어 제게는 명품으로 등극했죠. 삶에 즐거움을 주는 제품? 그게 명품일 수도 있겠네요.
민희식 <에스콰이어> 편집장(이하 민희식)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은 것. 저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걸 취했을 때 자기 자신의 가치를 드높여줄 수 있는 것, 그게 명품인 거죠. 명품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이미 너무 대중적인 건 사실 명품의 대열에서 밀려났다고 볼 수 있어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제품으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죠.
김동철 문화예술심리콘텐츠 전문가(이하 김동철) 사람과 사람의 사귐처럼 물건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간단해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잖아요. 그저 가격이 비싼 제품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실용적인 물건을 찾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어떤 취향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고요.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잖아요. 이제 누구나 아는 명품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감성이 묻어나는 제품이 주목받는 시대인 것 같아요.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라든가.(웃음) 제 아이가 그린 그림을 프린트한 지갑이라든가 말이죠.
민희식 맞아요. 이젠 명품 시장에서도 감성 마케팅이 주를 이루죠. 스토리로 변별성을 주기도 하고요. 고흐의 그림 중에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이라는 작품이 있죠. 작품 자체가 여타 고흐의 그림에 비해 뛰어난 건 아닌데, 제일 가격이 높아요. 왜냐하면 그 그림의 재료가 유별나서 아무도 흉내를 못 내거든요. 이제 그런 유니크함이 명품이냐 아니냐의 잣대가 되는 것 같아요.
강민지 일러스트레이터(이하 강민지) 저는 그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두 번쯤 겪은 험난한 고비와 이를 이겨낸 끝에 살아남은 독창적 아이디어, 이로써 얻어낸 명성과 이를 지켜나갈 수 있는 노력과 변치 않는 초심, 그런 것이 제품에서 느껴져야 진정한 명품 같아요.
유명한 명품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명품을 알아보려면 그만한 감식안이 필요할 텐데요. 어떻게 명품을 알아보죠?박지윤 취향이 분명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건 정말 중요하죠. 저도 제게 어울리는 스타일과 남들이 제게 어울린다고 하는 스타일 사이에서 고심을 많이 했어요. 또 아나운서라는 직업 때문에 스스로 취향을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간 적도 있고요. 결국 자신의 취향이 분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전 쇼핑 리스트를 작성해서 지워나가기도 하고, 또 맘에 드는 걸 발견하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두기도 해요. 그런 노력을 해야 나와 꼭 맞는 명품을 찾아낼 수 있죠.
강민지 명품 가방을 샀는데 만약 그게 나를 억압한다면 그건 아닌 거죠. 애지중지해 편하게 들지 못하고, 물 한 방울이라도 묻을까 봐 노심초사하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오랫동안 편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인지 잘 살펴봐야 해요.
그럼 본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명품이 있나요? 명품에 얽힌 일화도 좋고요.박지윤 스케줄에 쫓기고, 또 아이 엄마다 보니 아무래도 수납력이 좋고 때가 타지 않는 가방에 눈길이 가요. 무엇보다 가벼워야 해요. 또 보기엔 예쁘지만 예민한 소재는 피하게 되죠. 요즘은 프랑스 마레 지구에서 브랜드를 론칭한 한 디자이너의 뱀피무늬 합성피혁 백을 애용하는 중이에요. 이 브랜드에도 세월이 더해지고 스토리가 더해져 명품이 될 날을 기대하고 있달까요?
민희식 단연코 에르메스죠. 고집스럽다 할 정도로 ‘장인 정신’을 추구하는 브랜드거든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소신을 지키는 모습이 멋져요. 그런 게 근거 있는 자신감이죠.
김동철 저도 에르메스에 한 표 던집니다. 처음 세운 철학을 변치 않고 그대로 지켜가는 원리 원칙주의자 같은 브랜드죠. 이윤만 추구하고 쉽게 변질되는 브랜드와 달리 자신들의 철학을 고수하고 지켜나가는 브랜드 철학이 그 가치를 더 높여주는 것 같아요.
민희식 존 바바토스도 제가 주목하는 브랜드예요. 미국에서 유명한 브랜드죠. 1984년 폴로 랄프로렌의 다자이너로 시작해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캘빈클라인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했어요. 그러다가 1995년 폴로 랄프로렌 부사장으로 복귀해 폴로 진을 만들었죠. 2000년에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 존 바바토스로 론칭해 2006년부터 컨버스에서 컨버스 by 존 바바토스라는 제품 라인의 정식 판매를 시작했어요. 아시아 중 최초로 한국에서 컨버스 디자인을 맡았죠. 향수로도 유명하고, 얼마 전에는 존 바바토스가 디자인한 안경을 배용준씨가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박지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대학 때 선물해주신 프라다의 백팩이 생각나네요. 당시 선풍적인 인기여서 여학생이라면 소위 모조품이라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였어요. 꼭 가지고 싶다는 제 부탁에 아버지와 싸워가면서 여행길에 사다 주신 소중한 가방이죠. 딸에게 꼭 물려주려고 해요.
김동철 제게는 몽블랑에 대한 상처가 있어요.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브랜드인데, 공교롭게도 전 매번 애인과 헤어질 때 받은 선물이 몽블랑이었어요. 딱 세 번 헤어졌는데, 매번 이별 선물로 받았으니, 제게 몽블랑은 이별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요?
강민지 호주에서 샤넬 가방을 구입했는데, 당시 마음에 드는 두 제품 사이에서 무척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점원이 휴대폰으로 두 가방의 사진을 찍어가서 더 고민해보라고 하더군요. 다음 날도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했는데 전혀 짜증 내지 않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어요. 결국 3일 만에 마음에 드는 가방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얼마 뒤 칼 라커펠트의 일러스트가 담긴 엽서에 쓴 손편지를 보내왔더라고요. 나와의 쇼핑 과정이 즐거웠다며 언젠가 다시 한 번 들러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친절함에 감동받은 것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요.
천편일률적인 명품 소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짝퉁 시장을 봐도 그렇고 다들 똑같은 걸 너무 많이 들고 다니잖아요?박지윤 애초에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도 다른 연예인이 들어서 예쁜 거 가지고 싶으니까요. 실제로 스테디셀러를 산 적도 있고요. 분명히 장점이 있으니까 ‘3초백’도 탄생한 것이니 그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는데, 문제는 자신에게 너무 안 어울리는 제품을 들고 다니는 데 있죠. 더구나 그런 걸 빚까지 내서 산다면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민지 박지윤씨 말대로 꼭 사야 할 것 같은 게 있어요. 하나쯤 갖고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핫 아이템이랄까?
박지윤 맞아요.(웃음) 그거 이겨내기 정말 힘들어요. 저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마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재밌는 게 지방마다 특색이 있어요. 더구나 어머니께서 베이식한 아이템을 사주신 적이 없어 놀림을 받을 정도로 특이하게 입던 편인데 대학에 들어와서 바뀌었죠. 당시 폴로셔츠에 면바지가 서울 애들의 룩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베이식한 아이템만 입었는데, 어느 날 그렇게 입고 고향에 갔더니 애들이 난리가 났어요. 너 서울 가더니 촌스러워졌다고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야 해요. 누구에게는 베스트가 당사자에게는 워스트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죠. 트렌드에 너무 휩쓸릴 필요 없다니까요.
민희식 명품이라 불리는 것이 어떤 트렌드에 휩싸이는 순간, 이미 명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대중화되면 결국 명품이 아닌 거죠. 그냥 좀 비싼 물건이지. 우리의 대학 교육이 이제 고등교육이 아니라 대중 교육이 됐듯이 웬만한 명품은 명품이 아니죠. 아까 김 원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명품이죠.
박지윤 예전에는 명품이 모두 선망해서 갖고 싶어 하는 특별한 것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돈만 지불하면 가질 수 있으니 점점 장인 정신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없으면 명품이 명품이 아니죠.
짝퉁도 그래서 생겨나는 걸까요?
김동철 제가 아는 ‘사모님’ 이 있어요. 돈 많은 분인데, 명품 안 사요. 대신 마음에 드는 명품 패턴을 떠서 의상실에 찾아가 제작해서 입죠.(웃음)
민희식 그런 분들은 명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죠.
김동철 똑같은 걸 몇 벌 만들어 친구분들과 나눠 입으시더라고요.(웃음)
민희식 저는 사람들이 남성 슈트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남성복만 전문으로 만드는 브랜드를 추천해요. 젠냐나 존 바바토스처럼요. 여성복은 만들지 않거든요. 오로지 남자들만을 생각해서 만드니 그만큼의 대접을 받는 기분이죠.
박지윤 그리고 제품 자체의 기능도 중요한 것 같아요. 명품을 잘 몰랐을 때는 저도 편견이 있었어요. 비싸기만 한 거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하나 둘씩 사보니 개중에는 값어치를 못 하는 물건도 있지만 어떤 건 입는 순간 몸에 착 감기기도 하고, 어떤 신발은 신으면서 바로 내 발에 딱 맞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 이래서 명품이구나, 오래도록 사랑받는구나’ 싶었죠. 체감을 해야 명품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민희식 그리고 옷을 섞어 입어보면 딱 알아요. 명품과 저가 브랜드를 같이 매치해보세요. 몸으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한번 명품을 샀던 사람은 계속해서 찾게 되는 거겠죠.
그렇다면 명품을 고집하는 아이템도 각각 있나요?강민지 저는 가방이오. 보세 가방도 많이 사고 명품도 들어봤는데요, 확실히 보세 가방은 금방 벗겨지고 바래요. 명품은 보관만 잘하면 그 상태 그대로 정말 오래가니까 10년, 20년까지 사용하면 오히려 현명한 소비인 거죠. 정말 실용적인 측면에서 그래요.
민희식 명품 학대를 좀 하세요.(웃음)
강민지 명품까지는 아닌데, 청바지도 그렇죠. 청바지만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는 확실히 좀 달라요.
민희식 스티브 잡스가 이세이미야케의 하프 터틀넥, 리바이스 501, 뉴발란스 그렇게 고정으로 입었잖아요. 저는 그게 이해 가는 게 본인에게 제일 잘 어울리고, 또 편안한 거죠. 사실 이세이미야케 하프 터틀넥은 단종됐는데도 스티브 잡스가 특별 주문을 했으니 그게 진짜 명품인 거죠.
김동철 여자들의 과시는 생활 속에서 주로 이뤄진다면 남자들은 비즈니스적이에요. 저 같은 경우도 중요한 비즈니스 건이 있거나 예의를 차려야 할 때 구두, 시계, 필기구에 신경 쓰게 되죠. 명품보다는 콘셉트가 더 중요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박지윤 저는 운전을 못해서 많이 걷다 보니 자연히 신발에 예민해요. 발 사이즈가 애매한 중간 사이즈거든요. 이 브랜드는 맞는데 다른 브랜드는 크거나 작기도 하고. 그런데 좋은 신발은 확실히 달라요.
요즘은 명품 대여 숍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김동철 얼마 전 예고 음악회에 갔다 왔어요. 큰 홀을 빌려 돈을 많이 들여서 하더군요. 옷도 좋은 걸 입고. 이 얘기를 왜 하냐면, 필요하면 상황에 맞게 빌려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강민지 T.P.O를 위해서는 빌리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잠깐만이라도 향유하고 기분 좋으면 되지 않을까요?
박지윤 심리 상태에 따라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한 번 빌리고 만족하면 의미 있지만, 1회성으로 끝나 더 허탈하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민희식 전 긍정적으로 봐요. 사회가 다변화되고 있으니까요. 저도 턱시도를 입어야 할 자리가 점점 늘어나서 고민이거든요. 행사 드레스코드가 있잖아요. 그런데 많이 입어야 일 년에 두세 번 입을 걸 사기는 좀 그렇죠. 그럴 때는 빌리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박지윤 웨딩드레스 렌털처럼요?
김동철 그렇죠. 하지만 그건 결국 명품이 아니죠.
민희식 여자들 동창회를 생각해보세요. 동창 모임에 오면 가방부터 테이블에 올린다면서요? 그런데 거기서 굳이 구질구질하게 사는 형편을 보여줄 필요가 있냐는 거죠. 과장할 건 아니지만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봐요.
박지윤 저는 렌털보다 중고 숍이 나은 것 같아요. 비싸게 샀지만 취향이 바뀌면 팔고, 또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사는 시스템이 괜찮지 않나요? 물론 명품에 프리미엄 붙여서 재테크하는 건 제외하고요.
패션 토크쇼를 하면서 느낀 점이 궁금해요.박지윤 누구나 아는 패션에 대해 얘기하면서 ‘진짜 명품이 뭔지, 성장하는 브랜드는 이런 거구나’ 등 느낀 점이 많아요. 스스로도 명품에 대한 선별 작업을 하게 되고, 거품인 것과 아닌 것에 대한 안목도 좀 생기네요. 아, 그리고 패셔니스타가 그냥 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됐어요. 다 거기 쏟는 에너지가 있기에 가능하단 걸 말이에요.
김동철 속옷을 뭘 입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보여준다고도 하잖아요. 패션은 곧 그 사람이거든요. 앞으로 제자를 키우든 연구를 하든 그 부분을 좀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민희식 이번에는 가장 대중적이고 친근한 브랜드 위주로 진행했어요. 아마 기본적인 명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조금 식상하신 분들도 있겠지요. 저 역시 좀 더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쉽네요.
<명품의 탄생: 스캔들>은 현대미디어에서 운영하는 여성 오락 채널 TrendE(트렌디)의 자체제작 패션 토크쇼 프로그램으로, 지난 8월 24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밤 11시에 방송되고 있다.